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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은여시 작성일17-09-28 09:32 조회1,7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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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면 늙은 기녀는 성긴 머리를 쓸어내린다. 첫눈에 묶인 발자국이 봄 술로 익을 때까지 눈썹을 접어 한 켠에 둔다.
 
   차갑게 숙성되는 발자국을 위하여 붉은 눈의 남자들이 술을 데우고 있다.
   휜 발등을 닮은 달이 뜨면 필경사를 부르러 가는 여종이 유리종을 흔들고
 
   돌난간 위 행려병자들이 먹물에 대고 판각된 별을 희게 베끼고 있다.
   밤의 경계에서 젖을 빠는 늙은 항아들이 민무늬 토기처럼 순수해지고 있다고 청노새는 능묘 곁에 편자를 내려놓는다.
 
   겨울에 유배된 내실의 내력이 미약에 취한다. 비파를 타는 서풍의 서녀들이 현 위에 얹어놓은 밤을 당길 때
   바람이 등불 위에 한 겹 붓자국을 덧칠한다. 기녀가 화첩을 밀어내면 철지난 책들이 늙어가고 금련(金蓮)은 손톱 위에 서리로 덮인다. 추위는 발자국의 반대방향으로 익어간다고 필경사는 회고담을 집필중이다.
 
   객잔에선 어린 아비들 면발처럼 풀어져 바람의 방향을 묻는다. 천축(天竺)에서 온 사내들이 하얀 모래밭을 서걱서걱 외우는데, 푸른 방울소리를 매단 연꽃이 얼음의 가교 위로 미끄러진다. 눈먼 겨울나무의 전언이 우수수 떨어진다. 홍등이 거리까지 나와 배웅하고 있다.
 
   윤달을 비켜간 회화나무가 푸른부전나비의 부음을 듣는 밤, 풍장한 짐승들의 촉이 달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천공의 상처들, 고열을 예비한다.
 
   담벼락아래 냉기 빠진 발자국이 꾸물거린다. 걸음 하나가 전족(纏足)에서 풀려나고 늙은 기녀의 발에 물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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